바로 이날은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현행 지방행정체제를 지방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시대적 여건에 걸맞는 지방행정체제로 바꿀 수 있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9월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간의 합의로 제17대 국회에서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가 발족, 수차례의 공청회는 물론, 지방행정체제 문제에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전문학자들과 정부와경제·사회 각계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해서 비록 법률 제정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특위의 여야 만장일치로 시군구의 통합·광역화를 통한 행정계층구조의 감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을 본회의에 보고했다.
국회는 정부가 국회특위의 보고서를 근간으로 종합적인 용역을 실시해 앞으로 있을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해 활용하도록 했다.
그러다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총재간에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또다시 합의함으로써 제18대 국회에서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가 재발족해 수많은 공청회와 여론조사, 관계 전문가와 각 당의 의원총회를 통한 의원들의 의견수렴, 그리고 특위위원들간의 치열한 토론 등을 거쳐 드디어 2010년 4월 27일 역사적인 합의에 이르러 특위의 여야 합의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안)을 성안, 통과시켰다.
그러나 특위를 통과한 특별법(안)은 민주당의 수정·보완 요구로 인해 법사위에서 상정도 되지 않은 채 4개월이 넘도록 표류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여야간에 여러 채널을 통해 수차례 협의를 거쳐 특별·광역시의 자치구의회 폐지조항을 삭제키로 하는 등 어려운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오늘 특별법(안)이 역사적으로 본회의를 통과·확정됨으로써 100년이나 묵어 이제 더 이상 시대에 전혀 맞지 않은 낡은 지방행정체제를 고칠 수 있는 역사적 전기를 열게 됐다.
이번에 당초 특위를 통과한 특별법(안)의 내용 중 수정된 것은 모두 5가지이다.
첫째, 가장 논란이 많았던 특별·광역시의 자치구의회 폐지조항을 삭제키로 했다.
일부 언론 등에서 구의회폐지 조항의 삭제를 국회의원들이 자기 사람 챙기기라고 몰가치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런 지적도 있을 수는 있지만 구의회 폐지가 풀뿌리 자치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눈여겨 볼 일이다.
구의회폐지 조항이 삭제되었다 해도 그것이 바로 구의회의 존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의회를 폐지할 것인지 존치할 것인지는 앞으로 구성될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이하 행개위)’에서 우선 심사숙고하고 이후 국회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연기되었을 뿐이다.
둘째, 대통령 직속 ‘행개위’의 인적 구성을 정부가 주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통령 위촉위원을 2명 줄여서 총 9명(당연직 국무위원 3명 포함)으로 하되, 국회의장 추천위원을 2명 늘여 총 10명으로 하고, 지방자치단체협의회에서 8명을 추천하도록 함으로써 지방과 국회의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도록 보완했다.
셋째, 행개위의 시·군·구 통합 등 체제개편 기본계획안을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시한을 당초 행개위 발족 1년 이내에서 2012년 6월 30일까지로 약 6개월 정도 늦추도록 했다.
이는 중요한 기본개편안이 졸속으로 마련되지 않도록 행개위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더 준다는 의미도 있을 뿐 아니라, 1년 이내로 시한을 제한하면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제출하게 됨으로써 국회의 신중한 심의에 다소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점을 감안해 19대 국회 임기초에 제출토록 한 것이다.
넷째, 앞으로 풀뿌리 자치의 근원이 될 읍·면·동의 ‘주민자치회’로의 전환과 관련해서 주민자치회의 ‘법인화’ 조항을 삭제키로 했다.
이는 비록 이 조항이 임의규정이기는 하지만 주민자치회의 법인화는 또 다른 자치계층의 창출은 물론, 읍·면·동의 여러 가지 현실적 환경 등을 감안할 때 부작용과 혼란을 염려해 일단 읍·면·동의 주민자치회를 통합 창원시부터 시범적으로 시행해 본 후 차후 법인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현재 시·도 단위의 광역체제로 돼있는 소방업무를 앞으로 100만이상 도시에 일괄 넘겨주자는 내용에 대해선 우선 통합 창원시부터 시범실시한 후 그 경과를 보아가면서 확대하기로 했다.
이상 5가지 수정보완에 대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지방행정체제 개혁의 후퇴다’, ‘與野가 야합해서 뜨거운 공을 행개위와 19대 국회로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다’ 그리고 ‘특별법안에 알맹이는 하나도 없고 행개위에 모든 것을 넘긴 무정견(無定見)의 극치다’ 등의 비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특별법안의 통과로 드디어 100년 묵은 낡은 지방행정체제를 본격적으로 개혁·개편하는 역사적인 시동을 걸었다는데 제일 큰 의미를 찾는다.
그동안 정부수립 이래 역대 정부가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시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치적 부담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실기를 하고, 부분적·땜질식 개편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러나 고도의 중앙집권적 체제의 산물인 현행 지방행정체제를 그대로 두고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세상은 도시화·정보화·세계화·광속화로 급속하게 변화되고 있음에도 100년전 우마차가 최고의 교통수단이였던 당시에, 그것도 고도의 중앙집권 체제속에 만들어진 현행 지방행정체제를 몸에 익숙하다고 해서 그대로 둔 채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제대로 되기를 목청껏 외쳐 보았자 이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특별법 제정은 이러한 논란을 정리하고 이제 구체적인 체제개편이 착수하도록 법적, 공적인 명분과 의무를 갖게한 것이란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둘째로 이 법은 핵심내용과 방향으로 시·군·구의 통합·광역화와 읍·면·동의 주민자치회 전환, 특별·광역시와 도(道)의 지위와 개편, 그리고 통합시에 과감한 권한이양은 물론, 국가지방특별행정기관의 이양과 자치경찰제 실시 및 교육자치의 개편방향 설정을 담고 있으며, 또한 개편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과규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법에 규정된 내용과 방향의 범위아래 구체적 실행계획은 사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대통령 직속 행개위에서 심층논의를 통해서 마련하되, 반드시 국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되도록 함으로써 어느 일방의 주장으로 백년대계인 지방행정체제가 확정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전문성과 지속성을 갖기 어려운 국회가 100년을 내다보고 지방행정체제개편을 전담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만한 입법권 남용이 되기 쉽다.
그래서 행개위에다가 구체적 프로그램을 만들게 하는 것이 무책임하고 무정견(無定見)이라는 비판은 받아드리기 어렵다.
셋째는 일부 언론이 이번 특별법안의 수정보완이 ‘개혁의 후퇴’라는 주장은 결코 바른 지적이 아니다.
후퇴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성숙된 보완이라고 할 수있는데, 자치구의회 폐지문제도 효율성 하나만으로 결정하는 것보다는 자치성 등 여러가지를 균형되게 보아야 하고, 또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시한번 더 들어보고 난 후 결정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구의회 폐지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을 갖고 성숙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결정하자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이는 폐지든 존속이든 어차피 차기 지방선거인 2014년 6월 전에 결정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넷째,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칠 것이라는 의구심은 근거가 없다.
대통령 직속의 행개위 구성 자체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 부칠 수 없도록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위원들은 사계의 전문지식과 신망이 높은 분들로 위촉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행개위가 시·군·구 개편안 등을 마련함에 있어 절대로 밀실에서 위원들만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공청회는 물론 당해 시·군·구와 주민의 의견도 반드시 수렴해야 하고, 또 그 과정들은 언론에 모두 공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개위 결정으로 그대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국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행개위가 더 국민적 공감대 확보와 자신들에 대한 비판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논의과정을 충분히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국회가 무책임하게 행개위와 19대 국회에 떠넘긴 것도, 또 국회의원의 이기적 판단만으로 구의회폐지 조항도 삭제한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1991년 1월, 지방자치가 부활되기 직전 내무부(현재의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실시 기획단장으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실시를 대비한 제도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시·도 - 시·군·구 - 읍·면·동’ 이라는 고도의 중앙집권적 지방행정체제를 그대로 온존한 채 지방자치를 실시하면 많은 혼란과 비효율이 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방자치의 전면 실시에 앞서 지방행정체제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시기촉박과 국민적 공감대 확보가 곤란하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지방자치는 전면 실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예상한 대로 지방자치는 비효율과 혼란이란 평가를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야말로 몸은 중앙집권인데 옷은 지방자치를 입혀놨으니 양복입고 갓을 쓴 꼴이 아닐 수 없다.
1991년 내무부 지방자치실시 기획단장으로서 가졌던 지방행정체제개편을 위한 특별법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국회의원으로 들어와서 필생의 법제정을 이룩하게 되어 가슴벅찬 감동을 느낀다.
사실 17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특위를 구성했으나 결과적으로 법제정에 실패하고 또 다시 18대 국회에서 특위가 재가동 되었으나 국회 내·외 모두 ‘저러다 말겠지’, ‘법제정까지 가겠느냐?’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역대정부가 그러했고, 17대 국회도 그러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만난(萬難)을 무릎쓰고 법제정을 해냈다.
제17대와 제18대 국회에서 행정체제개편법을 주도해서 성사를 시켰지만 뜻한 바대로 국가의 100년 대계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후세에서 평가를 받을 것인지 참으로 두려운 마음도 앞선다.
특별법 제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공은 대통령 직속의 행개위로 넘어갔다.
대통령 직속의 행개위가 정말 온갖 지혜를 모아 훌륭한 체제개편방안을 마련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큰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새로운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이 주민의 왕성한 참여속에서 지방의 활력을 획기적으로 증진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의 제고에 크게 기여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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