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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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 임소라 기자
  • 승인 2010.05.27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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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이 살지 말게. 우리 몫까지 잘 살아야 하네… 라이언 일병……”영화 에서 존 밀러 대위가 자신의 임무인 라이언 일병을 구하고는 끝내 죽게 되는 장면에서 라이언 일병에게 건넨 마지막 대사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는 1998년 개봉한 영화다.
이 영화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던 밀러 대위(톰 행크스 분)에게 라이언 가의 사형제 중 마지막 남은 막내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 분)을 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날랜드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의 유명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아 더 큰 화제에 올랐다.
또 실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리얼하게 찍은 도입부는 그 어느 전쟁영화 보다 탁월하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 인터뷰 자리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지옥 같은 전쟁에서 어떻게 고귀한 인간 정신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주제에 매료돼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결국 는 1991년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분 후보로 선정되고 감독상과 촬영상, 음향상, 음향효과상, 편집상 등 5개 부분에서 수상하여 최고의 전쟁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를 보면 많은 사람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단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극적인 상황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의 희생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밀러 대위, 네 형제 중 오로지 한 명만이 생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참혹한 전쟁 상황. 이 두 가지 갈등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며 사람들에게 전쟁의 아이러니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배보다 큰 배꼽전쟁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과연 수많은 죽음이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하는 것이다.
전쟁은 생명의 가치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바닥까지 떨어뜨린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으로 기록된 제2차세계대전(1939~1945년)은 세계에서 약 1억 1,000만명이 동원돼 그 중 2,7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이 희생됐다.
민간인 희생자도 2,500만명.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하면 동원병력 수 약 2배, 전사자 수 약 5배, 그리고 민간인 희생자 수 약 50배를 넘는 등, 그야말로 사상 최대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지금도 그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이 세계 곳곳에 남아 있어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우리나라도 그 무렵인 1950년 한국전쟁을 치르며 많은 희생을 치렀다.
1953년까지 3년간 지속됐던 이 전쟁에서 유엔군 18만 명, 공산군 142만명, 그리고 남측 민간인 99만 명이 아깝게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우리 국토의 90% 이상이 초토화됐다.
전쟁의 역사로 볼 때, 전쟁에서 인간은 시대의 희생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다.
게다가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이러한 무고한 희생이 비단 전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상 속에서도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일터는 어떤가. 우리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가? 이 질문에 바로 그렇다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고,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물론 총을 맞게 되거나 폭탄이 터져 죽게 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건 우리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런 사고에 직면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재해 통계자료만 보더라도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산업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4시간마다 1명이 사망하고, 5분 22초마다 1명이 부상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일터는 총성 없는 전쟁 중2009년 한 해 동안 자신의 일터에서 사고를 당한 근로자 수는 모두 9만 7,821명. 이 중 2,181명이 목숨을 잃었다.
즉, 하루 평균 6명이 사망하고, 270명이 부상을 당하는 셈으로 총성 없는 전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산업재해로 인한 피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4년부터 지난 2009년까지의 자료를 보면, 산업체에서 재해를 입은 근로자 수는 약 404만 9,274명. 이 중 사망자 수는 약 7만 5,166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2008년 12월 기준, 부산광역시의 전체 인구인 361만5,101명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고, 경기도 과천시 인구인 7만 1,051명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것이다.
단순하게 경제 논리로만 따져도 그 피해는 아주 심각하다.
2009년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약 17조 3,157억 원. 인구 1천만이 살고 있는 서울시 전체 예산인 21조원에 비교해 80%가 넘는 금액이며, 연봉 2천만 원 상당의 근로자 86만명이 1년간 신규로 고용될 수 있는 금액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알려진 아랍에미리트의 버즈 두바이 빌딩 3개를 지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세계 무대로 나가기 위한 국가 경쟁력 향상에 온 나라가 힘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산업재해로 인한 이와 같은 인적, 물적 손실은 국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첨단 기술과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무장해 국제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 앞으로도 이 위력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 일터의 근로자만큼은 총알이 튀고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 속에서도 라이언 일병을 구하듯 치열하게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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