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정을 생각할 때 특히 안타깝고, 개탄스럽고 그러면서도 염려되는 점 한가지가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바로 공기업 문제이다.
공기업 부채는 날로 늘어만 가는 데 뚜렷한 대책은 없는 채 허송세월만 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원래 공기업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직접 제공하던 서비스를 민간기업의 장점을 살리고자 만든 기업 형태이다.
즉, 민간기업이 갖고 있는 신속한 의사결정력과 인원 감축의 신축성 등을 활용해 소비자나 수요자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공기업은 정부나 민간기업이 갖고 있는 각각의 장점은 잃어버린 채 나쁜 점만 갖춘 꼴이 되고 말았다.
민간기업의 강점인 효율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의사결정도 신속하지 못하고 경직돼 있다.
그렇다고 공직자가 갖춰야할 강한 책임성이나 윤리를 제대로 갖춘 것도 아니다.
책임감은 희박하고 윤리는 퇴색돼 버렸다.
이제는 공기업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됐다.
공기업이 맡고 있는 사업 중 소수 핵심분야는 정부 부처로 되가져가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민간으로 넘겨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LH공사의 경우 임대주택은 주거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그 몫을 담당하면 된다.
아예 정부가 임대주택사업 시행자가 되는 것이다.
반면 도시개발사업 등은 민간에 넘겨주면 된다.
지금도 일부 도시개발사업은 민간개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철도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철도건설은 국가가 하되 운영은 민간이 하면 된다.
민간 참여로 만성 적자를 이겨낸 일본 국철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 국철의 예는 이 글 마지막에 소개돼 있다.
현재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공기업의 부채 상황이나 방만 경영 실태를 보면 외과적 수술로는 안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가 LH공사이다.
LH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109조원, 올해 8월말 기준 118조원으로 하루 금융이자만 100억원 이상을 내고 있다.
LH공사의 부채는 국가채무(346조원)의 32%에 달하며, 23개 공기업 부채(212조 512억원)의 51% 수준으로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도 LH공사는 올해 직원 성과급으로만 1,000억여원을 썼다.
기본급의 44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직원 1명당 평균 1,600만원이나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LH공사는 250명의 유휴 인력에 대해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올 한해에 62억2,300만원의 교육비를 들여 국내ㆍ외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무더기로 연수를 보냈다.
이들에겐 교육비 외에 기본수당에 제수당, 성과급 포함 116억4,100만원을 급료 명목으로 지급했다.
중장기 경쟁력 향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100조원이 넘는 빚더미 속에 수십억원의 교육비를 쏟아붓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정말 명확하게 검토해 봐야한다.
LH는 게다가 임직원들에게 1인당 9,000만원(수도권 85m² 이하)까지 상환기간도 없는 무이자 전세대출을 해줬다.
전체 임직원 7,367명의 29%인 2,123명이 1,783억원을 대출받았다.
LH로 통합 전인 옛 토지공사 시절에는 2009년 임원을 제외한 전 직원 2,343명(1급 포함)에게 실제 시간외 근무 여부 및 근무시간과 관계없이 시간외 근무수당 119억2,200만원을 기본연봉에 편입하여 지급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도 엇비슷하다.
한국거래소는 2008년 6월까지 全 직원이 법인카드 1매를 소유했었고, 골프장, 유흥주점 등에서 2년 6개월 간 무려 3,030회의 카드결재를 남발하기도 했었다(2010.3.31 감사원 적발사항).또 2009년 기준으로 직원 1인당 평균 급료가 1억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이보다 훨씬 많은 급료가 지급될 예정이다.
복지 부문에서는 지난해 자기개발휴가 7일과 경로효친휴가 3일간 등 특별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연차휴가 보상금으로 1인당 600만원을 지급했으며, 요양비로 1인당 최고 4,340만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사규까지 변경했다.
직원 자녀의 사설 학원비로는 1인당 연간 120만원씩 지급했다.
가히 ‘신(神)의 직장’이라고 할만하다.
일반 봉급생활자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임금과 복지 수준이다.
농협중앙회는 성과급 잔치에만 1조5,000억원을 썼다.
농협중앙회는 겉으로는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최근 5년간 수조원대의 성과급 잔치와 명예퇴직금, 자기계발비, 사내근로복지기금, 자녀학자금 등을 편법으로 지급해 왔다.
2005년 이후 성과급만 1조5,575억원으로 이중 특별성과금만 2,938억원을 지급했다.
또 자기계발비 3,723억원, 자녀학자금 1,308억원, 명예퇴직금으로 1,972억원을 사용했고, 유흥업종, 실내골프장, 노래방 등 레저업종으로 분류된 곳에서 카드사용액이 1년 8개월 동안 8억6,000만원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전력, 산업은행, 석유공사, 도로공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채가 쌓여 금융이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데도 방만한 경영은 시정되지 않고 있다.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공기업 사업 부문에 민간을 참여시켜 성공한 사례가 있다.
바로 일본 국철 이야기이다.
우리가 참고할만 하다.
우리나라의 철도공사 격인 일본 국철은 민간 참여 직전인 지난 1985년 일본 정부로부터 6,000억엔을 보조받고도 1조엔의 적자를 지고 있었다.
그러나 철도에 민간을 참여시킨 1987년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특히 2005년에는 5,000억엔의 흑자까지 냈다.
법인세만 2,400억엔을 납부했다.
무엇보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한 철도 운송수입의 급증이 두드러졌다.
1987년 8만2,500명이던 직원 수가 2008년도엔 6만1,900명으로 25% 줄었으나 수송인원은 오히려 50억6,800만명에서 61억5,700만명으로 1.62배로 늘어났다.
수송수입도 1조4,022억엔에서 1조7,090억엔으로 역시 1.62배 증가했다.
열차 운행횟수도 급증했다.
신간선은 1987년 하루 159회에서 2008년 310회로, 재래선은 하루 1만 257회에서 1만2,357회로 늘었다.
운행횟수가 늘자 이용객들은 언제나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흑자 경영으로 운임 인상은 하지 않았다.
흑자경영과 서비스 정신이 향상되면서 안전투자도 1987년 276억엔에서 2008년에는 1,818억엔으로 대폭 늘렸고, 이에 따라 철도 사고도 같은 기간 376건에서 137건으로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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