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동물의 왕이 되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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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가 동물의 왕이 되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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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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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공사계약제도와 관련해서 ‘화장실만 갔다 오면 바뀌어 있다’, ‘돌고 돈다’는 등의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공사계약제도는 왜 이렇게 빈번하게 바뀌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사계약은 그만큼 이해관계자가 많고 그러한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하기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에 있어 경쟁은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의 룰이 필수적이다.
공사계약에 관한 경쟁의 룰을 만드는 정부는 경제와 건설산업 등 환경 변화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감안하여 공사계약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공사계약제도의 변화를 두고 목적과 방향성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건설산업의 경쟁력 강화, 공사 입찰과 계약의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와 같은 목적이 있었고 나름대로 그와 같은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져 왔다고 평가하고 싶다.
최근 공사계약제도 중에서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 개선이다.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는 민간의 기술력과 창의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공사 수행의 효율성과 건설산업의 기술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 등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방식이다.
국내외의 많은 연구는 설계시공 일괄(미국의 경우 Design-Build) 방식은 전통적인 설계시공 분리(Design-Bid-Build) 방식보다 공기, 공사품질, 공사비 등의 측면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공기와 공사비 증가는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시공속도가 빠르고 공사품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최근인 2006년에 발표된 미국 교통성(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산하 연방고속도로청(Federal Highway Administration)의 연구에 의하면 설계시공 일괄방식은 설계시공 분리방식에 비해 공기 측면에서 14.1%, 공사비 측면에서 2.6% 우수하다고 한다.
물론 동 연구는 양 방식이 공사품질 측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는 연구대상이 주로 도로공사인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설계시공 일괄방식의 비중은 이미 전체 공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와 같이 한 때 ‘비전통적인 발주방식’의 하나로 인식될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던 설계시공 일괄입찰은 이제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일반화되었다.
조달청 발주분을 기준으로 할 때 설계시공 일괄입찰의 비중은 최근 3년 평균 30%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설계시공 일괄입찰의 활용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설계시공 일괄입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선진국의 그것에 비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설계시공 일괄입찰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은 한마디로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설계시공 일괄입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아도 장점을 언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설계시공 일괄입찰의 문제점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고난도·고기술을 요하지 않는 공사가 설계시공 일괄입찰로 발주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최저가낙찰제와 비교할 때 낙찰률이 지나치게 높다.
셋째, 설계심의를 둘러싼 로비가 만연해 있다.
넷째, 입찰참가자가 소수이고 입찰가격의 차이가 적은 것에 비추어볼 때 담합이 빈번하다.
다섯째, 일부 초대형 업체가 독식하는 구조로서 중견 이하 업체의 입찰참가가 드물다.
이러한 지적의 일부는 물론 타당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며, 어떤 것은 타당성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설계시공 일괄입찰과 최저가 낙찰제는 엄연히 목적이 다른 제도이다.
발주자가 설계를 주고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최저가 낙찰제와는 달리 설계시공 일괄입찰은 고난도·고기술 공사이기 때문에 설계경쟁을 해야 한다.
이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저가낙찰제와 설계시공 일괄입찰의 낙찰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사실 설계시공 일괄입찰은 예정가격 대비 낙찰금액의 비율인 ‘낙찰률’이라는 개념조차 없다.
설계시공 일괄입찰은 예정가격을 작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공사비의 3% 이상의 설계비가 투입되는 설계시공 일괄입찰에 있어 일반적인 PQ 등급공사와 같이 많은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중견 이하 업체의 입찰참여도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활발하다.
공동도급 지분율 기준으로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30위 밖의 수주비중은 33%에 달한다.
현재 정부는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공정거래위원회, 조달청, 대한건설협회 등 업계, 학계와 연구계 등이 모두 참여하는 TF를 구성해서 활발히 논의 중이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개선방향은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면서 확인된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좀더 상세하게 얘기한다면 설계시공 일괄입찰 대상 공사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사만 설계시공 일괄입찰로 발주하고 공사 특성에 따라 설계·가격경쟁 수준을 조정하며, 중견 이하 업체의 적극적인 입찰참가를 위해 입찰비용을 경감하는 것이다.
물론 입찰담합을 한 자에 대한 불이익이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 개선을 추진함에 있어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의 본질과 부합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를 요구하거나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문제점에 대해 비판만 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나름대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기준과 방향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타당하지 않은 요구나 비판은 개선을 신속하게 추진하는데 있어 큰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 개선방향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우화를 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옛날 동물 나라에서 왕을 선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육지, 바다, 하늘에 사는 동물들마다 다양한 특성과 장점을 가지고 있어 모든 동물을 대표할 왕의 조건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육해공 모두에서 뛰어난 동물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결국 왕이 된 것은 사자도, 고래도, 독수리도 아닌 오리였다.
왜냐하면 뒤뚱거리지만 육지를 달릴 수 있고 물 위와 물 속에서 헤엄을 칠 수 있으며, 하늘을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설계시공 일괄 입찰제도 개선을 추진함에 있어서 앞의 우화에서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저것 다 고려하다 보면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설계시공 일괄입찰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러한 이해를 토대로 한 대안이 동반된 건전한 비판이다.
그래야만 육해공 모두 가능은 하지만 어느 하나 탁월한 것이 없는 오리가 동물의 왕이 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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