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공사비 폐지, ‘고요속의 10년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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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공사비 폐지, ‘고요속의 10년 외침’
  • 이유진 기자
  • 승인 2014.09.22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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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단, 3차례 개선논의만 이뤄져

[오마이건설뉴스 이유진 기자] 적정 시공원가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건설업계는 발주기관의 예정가격 삭감 관행에 속수무책이다. 공공공사는 발주 전 예정가격을 작성토록 하고 있으나 예정가격 작성기준으로 규정된 방법으로는 터무니없다.

건설공사에 정부는 ‘시장가격 반영’ 및 ‘건설업계간 기술경쟁 촉진’등을 목적으로 실적공사비 제도를 도입했지만,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예산절감 및 공사비 삭감 수단으로 변질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적공사비가 ‘계약단가’를 활용토록 함에 따라 구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고, 우리나라 입낙찰제도상 낙찰하한율 등에 맞춰 예정가격보다 일정비율 낮은 금액으로 입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그 이유다. 따라서, ‘계약단가’를 실적공사비로 활용할 경우 낙찰률의 반복 적용을 받아 계단식으로 지속 하락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한, 그간의 개선내용을 살펴보면 10년 동안 실적공사비의 폐지를 주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3차례만 개선논의가 이뤄졌다. 지난 2007년 10월, 2012년 8월, 2013년 8월에 논의됐던 개선내용은 결국 꼬리를 무는 문제점만을 남겼다. 결국, 실적공사비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확인 사살한 셈이다.

실적공사비 관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신뢰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예산절감 위주의 정부 편향적 관리행태며, 공공기관 특성상 상급기관을 지나치게 의식해 매우 경직되고 보수적인 운영으로 시장상황을 외면한 것도 또 하나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제도 연구·개선 노력은 부재하고 업계 개선요구에 대한 수동적 대응만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공사원가에 대한 지식과 전문인력 부족, 경험 부재는 덧붙여서 뭐하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실적공사비가 ‘시장가격’의 변동을 전혀 반영치 못하고 현실과 크게 괴리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제도 도입 당시인 2004년과 현재 2014년을 비교한 결과, 공사비지수 64.6%, 노무비지수 56.8%가 상승한 반면, 실적공사비는 2.3% 상승에 불과하고, 물가변동까지 고려한다면 57.5% 하락했다.

업계는 수익성 악화의 주원인으로 실적공사비 제도를 지적하며 제도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이에 국회는 실적공사비 폐지 등 의원입법안을 발의했다. 아울러, 종합·전문건설, 주택, 전기·통신, 자재·장비, 기술자 등 관련 17개 단체는 ‘실적공사비 폐지를 위한 범업계 T/F’를 구성하고 정부·국회 등에 지난 6월, 8월 두 차례 연명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당초 실적공사비 폐지 또는 축소 요구에 반대적 입장이었던 국토부도 적극적 개선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실적공사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민·관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가격을 제대로 반영해달라는 건설업계의 요구안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지난 17일 실적공사비 개선을 위한 민관 합동 TF팀은 최근 2차 회의를 갖고 국토부가 내놓은 제도 개선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이번 2차 회의에서는 제도개선 논의의 중심이 될 국토부 개선안이 공개됐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토부안은 그동안 꾸준히 건설업계가 요구했던 개선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으로 전했다.

업계는 공사비 산정의 객관성 및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제3의 전문기관’인 가칭 건설원가센터 설립 및 ‘원가관리사제도’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영국처럼 원가관리사(QS)와 같은 전문가를 둬서 예정가격 산정 때 검토를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문제점 및 현안에 대한 파악과 분석은 면밀히 검토돼 있는 반면 개선방안은 지극히 1차원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폐지만을 주장하고 있고 세부적인 개선책이나 제도는 하나도 마련돼 있지 않다. 연내 의미있는 ‘개선책’을 반드시 마련하겠다는 그 ‘개선책’은 과연 무엇인가. 실적공사비 폐지를 소리치던 10년의 외침은 누굴 향해 소리치고 있었던 것인가.

또한, 현재 품셈데이터 조사·분석이 상당한 신뢰도 수준으로 상승했다 하더라도 품셈과 건설원가 관리에 대한 보다 근접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품셈과 실적공사비의 두 잣대를 심판하는 자는 다름 아닌 발주처이고, 어떤 것을 선택·결정할 지에 대한 제도적인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발주처의 임의대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한편, 정부는 공사비 산정기준을 만들고 관리할 기관을 어디에 둘 지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는 정부 출연기관인 건설기술연구원이 맡고 있는 현행 방식으론 공사비 산정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관이 공동출자를 통해 제3의 기관을 설립하자고 제안한 것에 강경한 입장이다.

실적공사비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은 이미 지났고 충분하다. 지나칠 정도다. 이제는 입막음 수준의 개선책을 내놓고 자리피하는 것으론 앞으로 10년을 더 외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업계도 정부도 계절지난 옷가지들을 놓고 더 이상 끄집어내기는 그만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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