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권의 건설세상이야기] 원수급시공자에 책임을 집중하는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안전사고 줄이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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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권의 건설세상이야기] 원수급시공자에 책임을 집중하는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안전사고 줄이기 힘들어…
  • 오마이건설뉴스
  • 승인 2014.06.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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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권 대한건설협회 기술정책실장

모든 관련주체가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는 체계로 바뀌어야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3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된다는 말이 인터넷이나 술자리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 말의 근원지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추정컨대 일부 부유층 엄마들과 아빠들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만든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고 2, 3학년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필자로서는 왠지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과연 재력, 정보력, 무관심 등 일부 특정 요건만 갖췄다고 하여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을까? 이 말에 대부분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동일한 환경 및 조건이라면 할아버지의 재력이나, 엄마의 정보력 등은 도움이 되겠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주변에서 할아버지 재력이 빵빵하고, 엄마는 온갖 모임과 모든 대학입시 설명회를 다니면서 쌓은 상당한 정보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녀는 기대이하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를 빈번히 볼 수가 있다.

반면 보통의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가 집안과 학교의 지대한 관심과 구체적 역할 분담 하에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결국, 자녀의 대학 진학은 본인을 포함한 부모, 가족, 학교 교장, 담임선생님 등 모든 관련 있는 사람들의 역할 분담을 통해 최상의 결과를 얻어낼 수가 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가 있다.

안전사고 예방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체험장을 만드는 등 몇 가지 개선 만으로 과연 안전사고가 예방되고, 안전사고 발생시 신속히 대처할 수가 있을까? 정부는 안전사고 예방대책 로드맵을 만드는 등 정부 정책을 수립하고, 국회는 이에 필요한 법안을 제․개정하고, 행정기관은 안전 매뉴얼 및 체험시설을 만들어 전파하고,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 의식 수준을 높이는 안전교육을 하고, 사법부는 철저히 법을 집행하며, 국민들은 안전을 체득하고 몸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즉,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교육기관, 국민 모두가 각자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 안전사고는 비로소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건설공사는 기획․계획․설계․시공․감리․유지관리 등 여러 단계로 이뤄지고 발주자, 설계자, 감리자, 원수급시공자, 하수급시공자, 자재․장비업자, 건설근로자 등 많은 관련주체들이 참여한다. 여러 단계에서 많은 관련주체가 참여하는 건설공사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더욱 더 관련주체간의 협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러 관련주체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은 거의 시공자에게 집중돼 있다.

심지어 발주자 또는 설계자가 계획 및 설계를 잘 못해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경우에도 시공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방화대교 붕괴 사고를 들 수 있다. 설계자가 과도한 편심이 주어지도록 구조 설계를 하여 원천적으로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공자에게 동일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다른 주체들은 안전사고를 계기로 역할과 책임을 분담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는 자세를 가다듬기는 커녕, 시공자에게 더 책임을 떠넘기고 이를 계기로 업역을 넓혀 본인들 실속을 챙기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턴키와 기본설계 기술제안입찰을 제외하고는 발주자가 설계도서를 작성․제공한다. 선진국과 달리 발주자가 설계도서를 제공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시공자에게 전적으로 사고 책임을 지우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배치된다. 발주자 또는 설계자가 설계도서 작성 과정에서 안전과 관련된 도면, 구조검토, 비용 등을 누락시키고 공기를 잘못 산정하는 경우나 감리자가 검토․확인 업무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경우에는 시공자의 안전관리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시공 과정에서도 하수급시공자, 자재․장비업자, 건설근로자 등 시공주체가 원수급시공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원수급시공자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하수급시공자와 건설근로자가 작정해 의도적으로 철근을 도면대로 배근하지 않거나 철근을 빼먹는 경우는 원수급시공자의 시공 및 안전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안전사고는 발주자 및 설계자의 계획 및 설계 잘못, 감리자의 검토․확인 잘못, 원수급시공자의 시공․품질․안전 관리 잘못, 하수급시공자의 시공 잘못 및 지시 불이행, 건설근로자의 지시 불이행 등 다양한 유형으로 인해 발생된다. 그런데도 사회적 분위기는 시공자 특히 원수급시공자가 잘못하여 발생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이 발의한 시공자 처벌 강화, 원수급인 처벌 강화의 법안이 그 단적인 예이다.

물론 원수급시공자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당한 처벌을 받고, 만약 그 처벌기준이 타 법령에 비해 약하다면 처벌을 강화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주체의 잘못까지도 원수급시공자가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시공자 및 원수급시공자의 처벌 강화가 안전사고 예방의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년 초 정부가 합동으로 마련․발표한 ‘건설현장 재해예방 종합대책’에서 발주자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를 도화선으로 정부, 발주자, 설계자, 감리자, 원수급시공자, 하수급시공자, 자재․장비업자, 건설근로자 모두가 합심해 안전사고 예방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정책방향이 수립되고, 제도 개선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부는 적정 예산을 편성하고 적정 공기와 공사비 관련기준을 만들고, 발주자와 설계자는 적정 공기 및 공사비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하며, 시공자․자재장비업자․건설근로자는 안전사고 예방을 최우선으로 해 시공․시공관리를 함으로써 시공에 참여할 때 건설공사 현장에서 안전사고는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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