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토목인’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 본지 대담 기사 소환
상태바
‘영원한 토목인’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 본지 대담 기사 소환
  • 오세원 기자
  • 승인 2023.01.08 0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토목인의 삶을 살겠다”
“‘위기를 기회’로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써야한다’

“건설업계가 좀 더 순수할 필요가 있다”

“토목업체가 본업을 떠나 집사장하면 안된다”

2005년 당시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이 임직원 가족 등을 초청, 격려 모임을 갖고 있다./사진제공=진상화 충북개발공사 사장(개인소장)
2005년 당시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이 임직원 가족 등을 초청, 격려 모임을 갖고 있다./사진제공=진상화 충북개발공사 사장(개인소장)

[오마이건설뉴스]지난 한 해 우리는 코로나19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건설자재 및 유가의 고공 행진, 건설공사비 급상승의 충격, 안전 관련 규제의 강화 등 현실적 어려움이 겹쳐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올해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들만 가득하다. 그래서 본지는 본지가 지난 2008년 7월 21일 신문에 게재한 당시 이지송 경복대 학장 대담 기사 <어떻게 지내십니까?>를 원본 그대로 소환했다.

본지는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의 대담 기사를 건설인들이 읽고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지송 학장은 본지와 대담 이후 2009년 10월 1일부로 초대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후 2013년 5월 14일,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에서 퇴임하게 된다. 퇴임식 직후 직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사랑합니다” “계속 LH,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퇴임 후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건설환경공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했다.<편집자 주>

[본지 2008년 7월 21일자 대담기사 전문]이름 석자만으로 대한민국 건설산업계는 물론 ‘열사(熱沙)의 땅’ 중동을 호령하던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현 경복대 학장). 한국 최고의 건설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그가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제2의 삶’에 여념이 없다.

현대건설 토목사업본부장과 영업본부장을 거쳐 2003년부터 3년간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그이지만 지난 2년 동안 언론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해 왔다. 그런데 그가 기자의 끈질긴 접촉에 만남을 약속했다. 만나기로 한 7월 한여름 어느날, 오전 9시 매봉역 사거리, 벌써부터 아스팔트는 계란도 익힐 태세다. 

단 1분의 시간도 쉬이 여기지 않는다는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을 만나러 한걸음에 달려갔다. 강남 매봉역 근처에 위치한 오피스텔 4층에 자리 잡은 그의 보금자리로 그는 (기자를)반갑게 맞아 주었다. 기자입장에서는 드디어! 라고 소리칠 만큼 실로 오랜만이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도 그는 왜 침묵으로 일관했을까. 이번 만남도 공식적 인터뷰이기보다는 자연스런 만남으로 이야기가 오갔다.

“누추한 곳에 오셨네 그려. 지금은 내가 말할 때가 아닌데, 차나 한잔씩 하고 가지.”

기자와 만남의 자리에서도 여기저기 후배 토목인들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너털웃음으로 농담을 건넸다. “놀지 말고 일해. 절대 시간을 그냥 보내지 말어. 뭐든지 해야 한다.”

다시태어나도 토목인의 삶을 살겠다”며, 영원한 토목인으로 남기를 원하는 이지송 학장이지만 왠지 ‘아직 (말할)때가 아니라’는 말만 되새긴다.

현업에 있을 때 나한테 안 맞아 본 사람이 없었지..

그는 누구인가? = CEO로서 그의 성과는 눈부시다. 현대건설 사장으로 취임한 2003년 3월 회사 주가는 980원. 외환위기 이후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였다.

밑바닥을 기고 있는 현대건설을 이지송 학장은 재임기간 3년만에 8조원대 신규수주에 3,200억여원의 순이익을 거두는 회사로 거듭나게 했다. 또한 취임식에서 약속했던 경영정상화와 이라크 미수금 문제, 그리고 서산간척지 개발도 모두 해결했다. 980원이던 주가는 퇴임당시 4만원을 넘었다.

현직에 있을 당시, 현장 직원들과 함께 몸을 섞어가며 땀을 흘리고 운동을 즐겼을 만큼 인간적인 모습으로 임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반면, 실수를 반복하는 임원들한테는 조인트를 날리는 무서운 ‘호랑이’로 통했다.

현업에 있을 때 나한테 안 맞아 본 사람이 없었지... 아마!”

현대건설 역대 CEO중 도중하차 하지 않고 퇴임식을 가진 뒤 회사를 떠난 유일한 CEO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경복대에서 후학양성의 길을 걷고 있는 이지송 학장은 평일중 금요일을 빼곤 하루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다. 아침 7시에 학교로 출근, 저녁 7시에 귀가한다. 주말과 금요일은 주로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찾아오는 후배들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딸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마침 (인터뷰 당일)오늘은 미국에서 손녀가 와 있단다. 손녀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목소리에 애정이 가득하다.

그는 건설업계 현직에 있는 후배들과의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현직에 있을 때도 학연, 지연에 관계없이 토목인 후배들의 집안 대소사를 직접 챙길 정도였다. 사석에서 만난 후배들에게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돈에 욕심 부리지 말고, 의욕을 가지고 그 대가로 보람을 느껴라.”

그가 후배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닌, ‘돈 많이 벌지 마라’이다. 돈에 욕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사리 분별이 어렵다. 보람을 기쁨으로 산다면, 돈이 따라온다.

그는 요즘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들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지송 학장은 대한민국 건설업계 CEO출신중 유일하게 관·산·학·공기업 등을 두루 섭렵한 특이 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관 및 공기업 등을 거쳐 현대건설에 30년을 몸담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지 올해로 딱 45년이다.

그는 또 ‘한국을 일으킨 엔니지어 60인’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한국경제를 일으킨 60인의 공학도로 선정된 그는 ‘다시 태어나도 토목 공학인의 길을 택한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건설산업은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다.”...위기가 곧 기회다 = 그가 2003년, 현대건설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현대건설 속사정은 말이 아니였다.

이라크 미수금 등 대규모 미수금이 상당 부채로 남아있었고, 해외사업 위축 등 당시 ‘곪을 때로 곪’은 살림살이를 보고, 앞이 막막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좌초’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난파선의 선장으로 이지송 전 사장은 좌절할 틈도 없이 움직였다.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내달리며, 3년만에 현대건설을 정상화 시키고 아름다운 퇴장을 한 것이다.

현대건설 58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달성한 그는 해외수주를 극대화 시킨 장본인이기도 한 그에게 현재의 위기에 대해 물었다.

“건설산업은 외형적으로 좋아보였던 순간에도 항상 어두운 그림자를 밟고 있었어.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야. 현재는 사회구조도 많이 바뀌었지만, 제한된 건설물량에 비해 건설업체는 급속히 증가하면서 물량 배분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년간 전체 건설물량은 100조 내외로 한정되어 있는데, 이를 4만개 달하는 건설사가 나뉘어 먹는다고 생각해봐 물론 단순계산이지만....”

그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해외 석유화학플랜트 공사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동은 글로벌화의 전진기지이지. 사막의 노다지를 캐기 위해 다시 열사의 땅으로 눈길을 돌려야 해. 지금이 기회야! 중동의 석유화학플랜트 설비시설이 생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제, 교체를 하든지 신·증설이 필요할 때이지. 공교롭게도 그 30년 주기가 바로, 지금 이 시점이다. 특히 국민들은 플랜트 공사는 기계나 전기 설비가 주류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목 공종이 전체 공종의 약 3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3~4년은 대규모 석유플랜트 공사가 해외건설 시장의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게 이지송 학장의 진단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건설산업계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건설 역사 60년동안 줄곧 어려움 속에서도 전진해 왔다.

그는 위기를 딛고 일어선 CEO의 위상에 걸맞게 “‘위기를 기회’로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 창고’ 필요하다 = 이지송 학장은 영원한 토목공학인으로써 특히 댐 등 물관리 부분에 전문적 식견과 경험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옛날 우리나라 싸움 중에 제일 큰 싸움은 물꼬 싸움이었다. 시골에서는 물꼬 싸움에 살인이 날 정도였다. 그만큼 물길은 우리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 쓰듯 한다’는 옛 속담처럼 우리는 더 이상 물을 ‘물 쓰듯’ 할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는 현재 물 부족 국가로 분류돼 있는데, 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앞으로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야”

이지송 학장은 물부족 국가로 불리우고 있는 우리나라 물관리의 효율적 방안(이수, 치수, 친수) 마련의 시급성을 경고했다.

“물 창고를 많이 만들어 장마철 때 빗물을 모아 활용해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옛말이 틀린게 없다.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맞는 인식과 행동이 필요할 때이지…”

업계가 더 좀 ‘순수’해야 = 그는 건설업계가 가야할 방향을 묻는 질문에 업계가 좀더 순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가 좀 더 순수할 필요가 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본연의 의무를 다 할 필요가 있다. 발전을 위해서는 업계의 정리도 필요하고, 순수 업종에 매진해야 한다. 토목업체가 본업을 떠나 집사장하면 안된다.”

산책을 즐기는 그는 이따금씩 학교 한 바퀴를 돈다. 정도를 지키고 마음을 건강하게 다스려야,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지송 학장은 늘 ‘담담’하다.

그가 한 회사를 기사회생하는 다리 역할을 했을 때에도, 임직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사기를 돋궈줬었다.

그는 ‘담담함’으로 어디서든 일체가 될 수 있었다.건설업계의 행보에 대해 말을 아낀 이지송 학장은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써야한다’는 뜻을 내비치고 8월의 맞짱 인터뷰를 기약했다.“내가 먼저 연락할테니까 하루종일 시간 비워야 할 거야……”

이순(耳順, 60세)의 나이를 훌쩍 넘어 종심(從心, 70세)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성취감은 그를 의욕에 불타게 했다.

아직도 그의 성공신화가 200만 건설인 가슴속에 아롯 새겨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대담 - 오세원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