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발주기관의 생각이 바뀌어야 건설 산업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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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발주기관의 생각이 바뀌어야 건설 산업이 산다
  • 오마이건설뉴스
  • 승인 2014.08.1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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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발주기관의 우월적 지위는 이제 그만 벗어나야 할 때

얼마 전 미공병단에서 건설공사 코스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분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건설공사 예산 편성, 설계, 공사비(예정가격)산정, 설계변경 등에 대해 미공병단의 운영 실태를 들을 수 있었다.

첫째, 예산 편성 부분이다. 미공병단에서는 계획, 기본설계, 상세설계 등 설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공사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예산을 넉넉하게 편성하고 있으며, 예산편성 이후에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예산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비를 단계별로 5~10% 편성한다고 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설계초기 단계에서는 10% 정도를 예비비로 편성하고, 불확실성이 거의 해소되는 상세설계 단계에서는 5% 정도를 예비비를 편성한다고 한다.

예산을 최대한 빠듯하게 편성해 놓고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공사비 증액 사유가 발생했을 때도 공사비 증액을 꺼려하는 우리나라와는 접근방식이 너무도 달랐다. 건설공사는 초기에 불확실성이 높고 설계와 시공이 진행될수록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했다.

둘째, 설계 부분이다. 미공병단은 발주 시 입찰자에게 설계도와 시방서를 제공한다. 제공되는 설계도는 최대한 상세하고 명확하게 작성한다. 미공병단이 제시하는 설계도가 100라고 가정하면 우리나라 국방부 설계도는 35 수준이다. 설계도를 충실하게 작성함으로써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때문에 설계변경 빈도는 아주 낮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설계도가 잘못될 경우 공사가 진행될수록 공사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설계도를 정확하게 그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미공병단에 비해 30 수준인 설계도를 두고서 설계자들은 시공자가 그려야 할 시공 상세 도면까지 그려 준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셋째, 공사비 산정 부분이다. 미공병단은 예산 책정 단계에서는 과거 프로젝트 실적데이터, 실적단가 등을 참조, 개략견적을 해 예산책정을(예비비 10% 포함)한다. 그리고 설계도 완성 후에는 시장가격에 근접하게 공사비를 산출하기 위해서 품셈, 물가자료, 노임단가 등을 활용한 원가계산방식으로 예정가격을 산정한다. 또한, 우리나라 실적공사비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실적데이터를 참고하는 경우에도 미공병단이 50만불로 산정한 공사비에 대해 입찰자가 35만불에 낙찰됐다고 해도 실적데이터로 35만불을 사용하지 않고 50만불을 사용한다. 즉 최대한 공정(fair)하고 타당(reasonable)하게 공사비를 산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출처 불명의 실적공사비를 도입해 예산절감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깊이 반성해 볼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넷째, 설계변경 부분이다. 미공병단은 설계변경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설계도가 정확하게 작성되기 때문에 설계변경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불가피하게 설계도를 작성 당시의 현장 상황과 적용기준이 달라질 때는 설계변경을 한다. 예를 들면 지하매설물이 추가되거나 평균 강우 일수가 초과되는 경우에는 설계변경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공병단도 제시하는 기준이 다를 경우 설계변경이 가능하다. 다만, 설계도가 정확해 설계변경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 것은 설계도가 부실해 설계변경이 잦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업변경 부분이다. 만약 미공병단이 발주하는 공사의 공사비가 입찰자가 투찰한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낮다면 우선 유찰시키고 검토 후에 사업을 취소하거나 규모를 축소해 재발주한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 억지로 밀어붙이는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필자는 엔지니어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나라 정부와 발주기관에 소속돼 있는 구성원이 정말 영리하고 합리적으로 변화해야하며, 적정 예산을 편성하고 제대로 설계함과 동시에 적정 비용을 지급하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정부와 발주기관에 소속돼 있는 구성원이 갑의 우월적 지위에서 벗어나 상식선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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