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우먼파워 - 울트라건설 강현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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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우먼파워 - 울트라건설 강현정 대표
  • 이태영, 최효연 기자
  • 승인 2008.08.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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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 가업(家業)을 이어받아, 건설회사 최고경영자로 우뚝 섰다.
그것도 남성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종합건설회사 최고의 자리에서 위풍당당하게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2008년 건설업체 시공능력 순위 67위를 기록한 울트라건설(주) 강현정 대표이다.
강현정 대표가 경영에 뛰어든 지 벌써 일 년하고도 7개월. 대표이사 취임 당시 3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라는 핸디캡으로 주위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거대한 함대의 함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게 동종업계 고위 관계자들의 평가이다.
특히 강현정 대표는 공사금액 3,400억원 규모의 카타르 도하 하수관 공사 수주, 1,164억원 아제르바이잔 도로공사 수주, 281억원 말레이시아 TBM공법 방식 터널공사 수주 등 연이은 해외 공사 수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향후 건설업체 순위 20위권내의 진입이 목표라는 강현정 대표. 다음달(9월) 광교 신도시 분양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그는 어떤 포부를 가지고, 도화지에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것일까? 궁금해 그를 만나 봤다.
명령·조언하기 이전에 직원들 건의 사항에 먼저 귀기울여…강현정 사장의 첫인상은 당당함이 엿보였다.
짧은 커트머리에 바지 정장을 차려입고, 목소리도 굵은 중저음의 소유자로 상대방을 압도했다.
하지만 다소곳한 자세와 무릎 위 가지런히 포갠 손은 그가 섬세한 여성이란 것을 짐작케 했다.
평소 치마는 안 입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손사래 쳤다.
활동이 많고, 현장에 가서 현장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바지가 편하다고 대답했다.
응접실 내부에는 선친인 故 강석환 회장의 생전 사진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강석환 전 회장은 미국에서 토목업체인 울트라컨을 창업 운영하다가 부도난 유원건설을 인수, 국내 진출을 본격화 했다.
강석환 전 회장이 부도난 유원건설을 인수한 후 공사 수주 규모가 80배로 늘었고, 재무구조는 어느 건설업체보다 튼실해졌다.
부도났던 기업이 이렇게 무섭게 성장한 예는 기업사에서 드물었기 때문에 당시 강석환 전 회장의 ‘怪力경영’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선친인 강석환 전 회장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동안 강현정 사장은 미국 울트라콘 대표로 활동했었고, 지난 2003년 강 전 회장의 작고로 건설업체에 몸을 담게 된다.
귀국 후 그는 울트라건설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영수업과 국내 건설산업에 대한 분위기를 단계적으로 파악해 나갔다.
이어 부사장으로 어머니 박경자 회장을 보좌하던 그는 2007년 1월12일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건설업계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는데, 근황은 어떠신지?“작년에 이어서 해외진출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현지 업체가 기술적으로 할 수 없는 부문에서 특화사업에 정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 해외 진출국으로는 말레이시아, 카타르, 아제르바이잔 등으로 울트라건설은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아제르바이잔 땅에 태극기를 꽂은 대족적을 기록했다.
카타르에서는 여섯 개의 경쟁사를 제치고 3,400억원 규모의 하수공사를 수주했다.
그는 당시 영어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이를 높게 평가한 현지인들이 당초 계약했던 업체를 뒤로하고 그와 손을 잡은 것이다.
건설사 젊은 여성 CEO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공사를 딴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위의 칭찬일색에도 그는 “미국에 살았던 것이 영어를 자유자제로 구사하는 데 도움을 줬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회사 경영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사람이 큰 자산입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인재 양성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임원들이 베테랑이세요. 그분들이 전문적 역할을 많이 해주고 계시고, 그 판단을 가지고 제가 결정을 하고 운영하는 것이죠. 전반적인 것을 보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건설산업 하면 흔히 남성직업군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개인적인 견해가 있으신지.“여성이라는 장점을 많이 살려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사업의 경우도 섬세함이나 감각적인면이 요구될 때가 있거든요. 또한 직원들과의 소통에서도 좋은 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저 또한 편하게 대하고 있거든요,”강 대표는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한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는 말하기에 앞서, 먼저 듣는다.
특히 건의사항에 귀를 기울이는데, 건의사항은 메모해 두었다가 하나씩 실천에 옮긴다.
처음부터 현장사람들이 강 대표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눈이 침침해 플랫모니터로 바꿔주면 좋겠다’는 말을 누군가 흘렸는데 그 말을 기억한 강 대표가 모니터를 전부 바꿔놓은 것. 그 이후부터 그가 현장에 가면 불편한 사항이나, 건의 사항이 귀에 많이 들어온다.
-직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식사도 같이 하고, 쪽지도 하고 이메일로 소통합니다.
작년에는 직원 생일에 선물을 해줬는데, 올해는 직원 가족들과도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행사나 공연도 함께 합니다.
”강 대표는 1997년 여름부터 미국에서 건설업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선친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은 것. 그는 전화 응대부터 시작해, 회계보조 등의 업무를 트레이닝 받았다.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건설업계에 몸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경영이 기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예전에 중동에 갔을 때는, 기술이 부족하고 언어가 안통해도 손짓 발짓하면서 넘어갔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안 통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언어나 기술력을 확보해 우위에 있어야 하죠.”강 대표는 비올라를 전공한 음악인이다.
건설과 음악, 무엇인가 매치가 안맞을 것 같지만, 박사과정까지 마친 그는 음악과 건설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에서 하나의 악기로 연주되는 비올라가 다른 악기와 더불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듯, 건설도 설계 시공 감리가 조화를 이뤄야 불협화음이 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음악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시간에 쫓겨 비올라를 연주하기 쉽지 않지만, 언제나 가슴 한 편에는 음악에 대한 애착이 있다.
한곳에 집중을 하면 좀처럼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는 그는 비올라에서 건설로, 관심을 옮긴 후에 생긴 목표가 있다.
2012년에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선친이 업계에 계실 때 세워두셨던 목표였다.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목표를 위해 전진할 것을 다짐한 강 대표는 사훈을 일러주었다.
“최선을 다하고 힘을 기르고 더불어 나아가자” 이다.
최선을 다하자는 사훈은 선친인 강석환 전 회장의 신념이었다.
기술자로서 자부심이 커던 선친(강석환 전 회장)은 기술자가 CEO일 때 얼마나 회사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 했고, 항상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는 게 강 대표는 또렷한 기억이다.
“건설사의 여성CEO로서 사람을 다루는 것에 아직은 노련하지 못하다”는 그는 ‘이제는 쉽게 다가가고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하는 여성 특유의 친화성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나면 영화와 여행을 즐긴다는 강 대표는 주말이면 골프와 여가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내 건설산업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해외시장에서 플랜트 부문에 우리 건설업계의 기술력에 한계를 느낍니다.
기술력이 확보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시공부문만 맡고 있습니다.
모든 가격부문은 엔지니어링이 맡고 있기 때문에 특화된 부문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좀 더 키우고,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합니다.
”한편 강 대표의 하루일과는 오전 6시에 기상, 운동과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오전 7시30분에 출근 아침 회의 일정을 소화한다.
그리고 주로 오전중에는 내부결재를, 그리고 오후에는 외부 인사들을 접견하거나 대외활동을 통해 그의 입지를 넓혀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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