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의 자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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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인의 자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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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7.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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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토목기술자로서의 웅대한 포부 이전에 사회초년병이 느낄 수 있는 약간의 두려움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불확실성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한 부담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첫 근무지였던 제주. 그곳은 내가 학창시절에 느꼈던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 혹은 신혼여행지로서의 볼거리가 많은 그런 낭만과 추억의 섬이 아니었다.
단지, 직장생활의 첫 근무지이자 현장근무중인 수습사원이었던 현실이었기에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의 근사함도 만개한 유채꽃의 낭만도 내게는 그리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았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상사의 작업지시에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했고,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엉뚱한 일을 했을 때엔 가차 없이 상사의 꾸지람도 들어야했다.
또한, 퇴근시간이 되었어도 밀려있는 잔업과 내일은 또 무슨 일을 시키려나? 하는 걱정에 편히 쉬지도 못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정도의 차이일 뿐 그 시절 현장생활을 시작했던 내 또래의 기술자였다면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한번쯤은 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그 정도의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힘들어하고 고생스러워 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우리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우리 현장에도 신입직원이 부임해 오던 날, 난 나의 지난 15년 전 그때를 떠올리며 잔잔한 추억에 흐뭇한 향수를 느낀 적이 있다.
“아마 저 신입직원도 15년 전의 나처럼 지금쯤 어리둥절하고 힘이 들 텐데…….”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동안 IMF라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과,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회자되었던 그런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로 인해 토목기술자로써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열사의 사막에 플랜트를 세우고, 아무리 혹독한 자연환경이라도 꿋꿋하게 자연과 하나 되는 그런 우리 토목기술자이지만, 어이없는 그런 사고 앞에서는 스스로 위축 될 수밖에 없었다.
비난하는 매스컴의 목소리와 질책하는 시선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그동안 우리 경제발전을 위해 정열을 바치며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순수한 선배기술자들의 업적이 한꺼번에 매도되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 길을 걷게 될 나를 비롯한 후배 토목인 들의 희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듯하여 너무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 무렵 지하철현장에서 주임급. 초급사원이었던 나는 과연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반복된 물음에 난 당장 하고 있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자로서의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겸비하는 그런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몸담았던 현장에서 만큼은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처럼…….”선배직원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모르는 부분은 이해가 될 때까지 퇴근도 마다하고 매달렸고, 도면의 내용이 애매 할 때는 경험 많은 목수반장이나 철근반장에게 창피함도 모르고 물으며 배웠다.
그것은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가 떳떳하고 당당한 기술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자신들이 하는 작업을 관리감독하고 지시해야하는 직원이 도면을 들고 와 “반장님! 어떻게 도면만 보고 이렇게 하신 거예요?” 라며 묻는 나에게 “대학까지 나온 직원이라면서 그것도 모르냐”며 비웃을 수 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니 인간적이네. 내가 수 십 년 동안 여러 현장을 다녀봤지만 심주임처럼 묻는 사람도 없었고, 조금 안다고 다 아는 체 하며 사람 무시하고 막 대하는 그런 친구보다 훨씬 더 정이 가네…” 라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또한, 도면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소한 작업방법에서부터, 이론처럼 현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무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직원들이 검측을 하려면 여기저기를 꼭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는 등.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 까지도 친절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 이었다.
그 현장에서 근무하던 약 6년 동안 그분과 같이했던 3년 2개월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을까? 참 고마운 분이었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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